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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3인의 선교사
통일교 선교사의 ‘창세기’시절에 등장하는 삼인의 인물이 있다. 최봉춘, 김영운, 김상철 선교사 세분이 그들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정되고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원리>의 설명에 의하면, 부름을 받는 섭리사의 인물들은 다섯가지 조건에 부합되는 사람들이다. 먼저 선민 가운데 태어나야 하고, 선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으로 나고,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천품을 타고나야 하고, 그중에도 후천적 조건이 구비된 자를 머저 부르시고, 하늘이 필요한 시기와 장소에 맞추어진 사람들이다. ( <원리강론> 제6장 예정론 제3절 인간에 대한 예정 ) ------------------------------------------------------- 1. 최봉춘 선교사 섭리역사에는 하늘이 소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최봉춘 선교사는 성야섭리 시대의 해외 선교를 위해 하늘이 준비하시고 소명한 인물이었다. 최봉춘 선교사는 부산에서 태어


열전 < 유효원 협회장 >
유효원 협회장(1914-1970) 은 참부모님을 따라 산 세월이 2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생이었으나, 섭리의 발전사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사적을 남긴 통일교회사의 큰 인물이다. 천부의 뛰어난 지성으로 원리 말씀을 듣는 순간에 그 깊은 뜻을 깨우치고 영감어린 진리체계-<원리원본>을 학문적 언어로 정리하여 통일원리 해설서와 <원리강론>을 집필하였다. <원리강론>은 메시야 참부님의 계시서 <원리원본>을 기초로 성약시대의 하나님의 진리를 신학적 논리로 해설한 새시대, 새말씀의 교본이다. 통일교는 <원리>라는 진리를 중심으로 신앙의 새차원을 열었다. 기존의 ‘믿음으로 만이’라는 소생기 유아적 신앙을 넘어, ‘아는 만큰 믿는다’는 바른 자세로, 참된 종교- ‘신령과 진리’를 중심한 높은 차원의 신앙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이 새진리-‘원리’의 집필자도 유효원이었고, 이 ‘원리’의 제1강사도 유효원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매일 10시간 이상을 강


홍순애 대모님
- 천정天情의 길, 2천년 한국사의 의미 - <원리>의 설명에 의하면 주님이 한국으로 재림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다. 1) 탕감 복귀의 민족적 기대, 2)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 3) 심정의 대상이 된 나라, 4) 예언자의 증거가 있는 나라, 5) 모든 문명의 결실지의 자격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왜 한국으로 오셔야만 하는가.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주님은 한국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홍순애 대모님은 그 이유를 생애를 통해 설명해 주셨다. <원리>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내용을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 다시 오시는 독생자 재림주님은 사랑의 대상되는 여성 대표를 만나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초림 때 이루지 못한 창조의 이상을 “어린양 잔치”를 통해 완성하시기 위함이다. ‘어린양 잔치’를 하려면 독생자는 독생녀를 만나야 한다. 그 독생녀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주님은 한국으로 오


영원한 "원장님" 이상헌
메시야 재림주님이 탄생하시는 때(1920년)을 전후하여 한반도는 섭리의 때를 위해 준비된 인물들이 많이 태어나게 된다. 다 계시적 인물들이고 주님을 받들어 이룩해야할 각자의 사명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이상헌 원장님은 민족의 운명을 놓고 고뇌하였고, 의학도로 학업에 전념하면서도 인생의 근본문제, 생과 사 ,삶의 목적, 사후의 문제, 영생의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였다. 이상을 추구하는 젊은 학창시절에는 이상세계의 실현을 말하는 공산주의에 심취하여, 관련서적을 탐독하였고 좌파 동지들과 항일투쟁을 같이 하기도 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듯하였으나, 궁극적 진리에 미치지 못하여 마음 한구석이 늘 석연치 않았다. 궁극적인 답을 찾아 새로운 종교세계을 탐문하고 있을 때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1956년 당대에 소문난 통일교의 <원리말씀>을 듣고 때에 맞게 ‘뜻의 길’을 출발한다. 원장님은 20세기 당대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공산주의를 극복할


<< 誠愛士 양윤영 선생 >>
誠愛士 양윤영 선생 재림의 때다. 한반도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의 1920년대, 30, 40, 50년대는 성령의 시대요, 동시에 계시의 시대였다. 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령한 사람들, 예언하는 사람, 영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고, ‘이제 곧 주님이 오시니, 회개하라’ 외치는 부흥회도 많았다. 임박한 섭리의 때를 알리는 사건이 1954년-55년에 발생한다. ‘이단 통일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제적하고 교수들을 제명하는 사건이 터지고, 연일 언론의 일면을 장식했다. 아버님이 7월4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하늘이 준비한 섭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요한, 최원복, 유효원, 정석천, , ,,, 양윤영, 김영운, 박봉애, 박보희, 김영휘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주님을 만나 섭리의 주역으로 나서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양윤영 선생의 사적이 눈에 띄는 이유는 50년대 통일교 수난 시대의 단초를


김원필 선생의 일생
‘협회입회원서 1번’인 김원필 선생은 ‘아버님의 수제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예수 앞에 베드로와 같은 인물이다. 통일교 식구 모두가 감사하는 선배 식구다. 평양에서 사범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19세에 참 스승이신 아버님을 만나 일생을 모시고 따랐다. 흥남 감옥으로 충모님을 모시고 면회를 갔고, 다리불구 제자 박정화를 자전건에 태우고 아버님께서 천리남행-대장정을 할 때(1950년12월4일-1951년1월17일), 평양에서 부산까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수없는 생사의 고비를 아버님과 함께 넘었다. 6.25 전쟁중 부산 피난 시절에는 범냇골 토담집을 아버님과 함께 짓고, 밤낮으로 그림을 그려 생활비를 벌어댔고, 아버님께서 <원리원본>을 집필하실 때, 연필을 깍아대느라 땀을 흘렸다. 아버님이 계시적 내용을 써내려가실 때는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원리’를 쓰시기 때문에 연필이 금방 금방 달아버리기 경우가 다반사였다. 김원필 선생이 늦게


이요한 목사님의 사적
이요한 목사 (왼쪽) 이상헌 선생 (오른쪽) 1916년 9월4일 평북 선천군 출생 통일교회 1호 목사: 1954년 아버님께서 직접 목사안수를 해주심. 이요한 목사님은 통일교 목회자의 상징이요, 대표자요, 표상이라 할 만한 어르신이시다.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가 점점 강화되면서 많은 조선인들이 조국을 떠나 만주(중국의 동북3성)으로 이주하였다. 목사님이 7살 되던해 1923년, 가족이 중국 요녕성 심양으로 이주했다. 1939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까지 16년간 중국에 살며, 생업을 도우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하였다. 성서 연구, 신학공부, 설교와 전도는 그의 천직이었다. 교회에 목사가 없을 때는 자연스레 대신 설교를 하고 교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18세 때였다. 어는 순간에는 설교하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생계를 돕기위해 세상 일을 할 때도 성경공부와 하나님을 모시는 종적 신앙을 지켰다. 하


< 신애충모님: 최원복 선생님 유고집 >
신信애愛충忠모母님, 신애충모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고귀한 타이틀-휘호를 다 받으신 최원복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선생은 평소 잔잔한 미소와 조용한 음성-아버님 말씀을 통역하실 때도 소근소근하듯 통역하시는 것을 벨버디어 수련소에서 들은 적이 있음. 1980년-으로 말씀을 하시고, 언제나 높은 품격과 우아함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목소리를 높여 논쟁같은 것은 절대 할 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시는 분이지만, 불의를 보시면 먼저 행동하시는 분이었고, 옳다 생각하면 앞장서 지지해 나서시는 정의파 의인이셨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자 13살의 "수줍고 순진하고 어질어빠진" 여중1학년생이 항일 데모에 앞장서,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신애충모님 유고집) 신애충모님 최원복 선생 이는 시작일 뿐, 신애충모님의 놀라운 사적은 1954년 아버님을 만나며 섭리적 차원에서 계속됩니다. " 학생들이 이단교


이봉운 장로 회고록 : <知足者常樂> 지족자 상락
“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면 늘 즐겁다 ” 이봉운 장로님은 이수경 지구장님 36가정의 부친으로, 제주도 피난시절에 이요한 목사님을 만나 서로 깊이 믿는 신앙의 동지가 되어, 1952년 이요한 목사님이 아버님을 만난후 부산으로 오라하니, 전가족을 데리고 함께 식구가 된 첫사례의 인물로, 1953년 수정동교회를 준비하여 드림으로 아버님의 초막시대를 마감하게 한 건국의 조상중의 조상이라 할만한 어르신입니다. 제주도 법환리의 피난생활 이야기는 하나님이 밤낮으로 함께하는 신실한 신앙인 가족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화들로 가득합니다. 기적이 일상화 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봉운 장로님의 놀라운 삶은 202쪽에 274까지 아버님을 만나는 날까지의 제주도 생활-씁쓸한 해초를 6식구가 주식으로 먹으며 은혜속에서 1년을 보낸 이야기에서 서사의 정점을 이룹니다. 장로님 48세, 사모님, 이수경, 이무경, 이연경, 이현경 8세 까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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