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애충모님: 최원복 선생님 유고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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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信애愛충忠모母님, 신애충모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고귀한 타이틀-휘호를 다 받으신 최원복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선생은 평소 잔잔한 미소와 조용한 음성-아버님 말씀을 통역하실 때도 소근소근하듯 통역하시는 것을 벨버디어 수련소에서 들은 적이 있음. 1980년-으로 말씀을 하시고, 언제나 높은 품격과 우아함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목소리를 높여 논쟁같은 것은 절대 할 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시는 분이지만, 불의를 보시면 먼저 행동하시는 분이었고, 옳다 생각하면 앞장서 지지해 나서시는 정의파 의인이셨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자 13살의 "수줍고 순진하고 어질어빠진" 여중1학년생이 항일 데모에 앞장서,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신애충모님 유고집)
이는 시작일 뿐, 신애충모님의 놀라운 사적은 1954년 아버님을 만나며 섭리적 차원에서 계속됩니다.
" 학생들이 이단교회로 몰려간다고 하니, 두분이 가서 보고오세요 " 김활란 이대 총장이 가장 신뢰하는 두분 교수-학생과장 최원복, 신학교수 김영운-를 보냈습니다. 두분은 원리를 듣고 감동하여, " 총장님, 아주 좋은 새진리입니다. 총장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고를 들은 김활란 총장은, " 구조선까지 침몰했구나!" 며 탄식했습니다.
이화여대의 반대와 탄압으로 5명의 교수와 14명 학생들이 제적을 당했습니다. 그분들은 "마치 하늘로부터 상장을 받은 기분으로 당당히 학교를 떠나", 희생과 헌신의 길,천일국 건국의 조상으로 가야할 길- 새역사 창조의 길에 나섰습니다. 회고록 39쪽부터 시작되는 선생의 놀라운 증언- 생애노정 일독을 권하며 마칩니다. 아주!!!

믿음 사랑 충성의 생애- 최원복 신애충모님 유고집.
2017년 명원Media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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