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홍순애 대모님

  • 5월 3일
  • 9분 분량


- 천정天情의 길, 2천년 한국사의 의미 -

 

<원리>의 설명에 의하면 주님이 한국으로 재림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다. 1) 탕감 복귀의 민족적 기대, 2)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 3) 심정의 대상이 된 나라, 4) 예언자의 증거가 있는 나라, 5) 모든 문명의 결실지의 자격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왜 한국으로 오셔야만 하는가.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주님은 한국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홍순애 대모님은 그 이유를 생애를 통해 설명해 주셨다. <원리>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내용을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


다시 오시는 독생자 재림주님은 사랑의 대상되는 여성 대표를 만나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초림 때 이루지 못한 창조의 이상을 “어린양 잔치”를 통해 완성하시기 위함이다. ‘어린양 잔치’를 하려면 독생자는 독생녀를 만나야 한다. 그 독생녀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주님은 한국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한민족의 선민 역사는 이 한 여성을 준비하는 역사였다. 2천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통해 하늘이 길러낸 민족성의 정수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존재하지 않는 듯 말 없이 살아왔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은 언제나 가정의 중심이었고 심정의 뿌리였다. 없는 듯 살면서도 중심 존재였다. ‘사랑의 중심 존재’였다. 구박받고 고난 받으며 고통을 당하는 한恨의 존재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어머님들은 승리한 사랑의 중심으로, 성화된 사랑의 본체가 되었다.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재창조 섭리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사랑의 대상을 말한다.


대모님은 지극한 정성으로 이 어머니의 사랑을 창조의 뜻을 중심한 사랑- 선민의 천정 天情으로 성화聖化 시키는 삶의 본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한국 어머니의 사랑을 터로하여 섭리 완성의 주인공인 한분의 여성, 참어머님을 보내실 수 있었다.


20세기 재림 주님의 때에 한반도는 성령 역사의 도가니였다. 20세기 중반, 조국의 독립 운동은 일제의 폭력으로 진압되었지만, 기독교 성령의 역사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거세게 타올랐다. 성서의 예언처럼, 꿈을 꾸고, 방언을 하고 계시받은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한반도의 동쪽은 산이 많고 해가 뜨는 곳이며, 서쪽은 평야가 많고 해가 지는 곳이다. 동쪽의 함경도 원산에서는 남성들의 신령 역사가, 서쪽의 평안도 철산에서는 여성들의 신령 역사가 펼쳐졌다. 여성 대표로는 성주교의 김성도와 복중교의 허호빈이 활동했으며, 남성 대표로는 황국주 전도사와 새예수교의 백남주목사, 이용도 목사등이 신령 역사를 일으켰다. 그가운데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메시지가 계시의 핵심이었다.


이 성령충만, 은혜충만 섭리의 한 복판에 홍순애 대모님이 있었다. 대모님은 모든 은혜의 역사에 동참 하시며 하늘의 음성을 듣고 많은 계시를 받았다. 평북 철산의 성령집단인 새주파 김성도 할머니 그룹에 열심이었고, 그분들과의 인연이 길게 이어져 복중교 시대를 거쳐 주님을 만나는 때 까지 계속 된다. 먹고 자고, 가고 오는 일체의 생활은 모두 다시 오시는 주님을 향한 한 마음뿐이었다. 대모님은 하나님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인간적 사랑은 하나님 사랑으로, 섭리의 심정으로 완전히 부활되었다.


외할머니, 조원모 할머님의의 가정은 애국심 또한 남달랐다. 홍순애 대모님은 조원모 어머니의 등에 엎혀 3.1독립 만세를 부르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8.15 해방 정국에서 참어머님은 대모님의 등에 엎혀 8.15 광복의 만세 소리를 듣고 자랐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심정 또한 깊었다.


3대에 걸친 하늘사랑과 대모님의 정성으로 만든 성별된 자리에, 때가 되어 하늘의 예고하고 준비한 아기가 태어났다. 2천년의 한많은 여성의 탕감복귀 섭리역사의 승리다. 대모님은 몽시를 통해 “아기는 주님의 딸이고 너는 유모와 같다. 성심을 다해 양육하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아기는 항상 ‘너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아기는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에 익숙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래는 어머님 저서전 <평화의 어머니>의 글이다


[ 조원모 외할머니는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변함없이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시다.”


심지어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엄마는 유모와 같다. 너를 하나님의 딸로 키울 뿐이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복중신앙이었던 터라, 그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고 한없이 넓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키우면서 세속적인 삶에 물들지 않고 하늘의 뜻을 실현시키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뼈가 녹아나는 것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일편단심 하나님 앞에 절대복종하고 절대 순종하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 참어머님 자서전 <평화의 어머니> 100쪽 )

----------------------------------------


오래 참고 기다리신 하늘부모님의 탕감복귀 역사는 책임을 다한 어머니들의 정성으로 ‘아기의 탄생’이라는 섭리적 결실을 보았으나, 대모님에게 이는 대서사의 서막일 뿐이었다. 사탄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딸’의 성장을 지키는 일은 문자 그대로 혈투전이었다.


2차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 군국주의의 시대는 지나갔으나 이어 3.8선으로 남북이 갈라져 가인권과 아벨권의 분립 시대가 시작되고,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걸어가야 할 길은 험난했다. ‘하나님의 딸’을 지키기 위해 대모님은 생사의 고개를 넘고 넘었다. 영적으로 사탄과의 싸움도 계속되었고, 육신의 생활고는 생식 정성으로 견뎌 냈다.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헤쳐나갈 수 없는 길이라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17년의 세월은 고난을 견디고 이기는 기적의 날들이었다.


북한의 공산 정권이 자리를 잡아가자 기독교인들은 선교는 물론 개인의 신앙 생활도 지킬 수 없는 어려운 상화이 되었다. 신실한 신앙인들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떠나게 된다. 조원모 할머니, 대모님과 어린 딸도 남으로 출발했다.

남북을 갈라 놓은 3.8선은 생명선이 동시에 사망선이기도 하다. 당시에 삼판선을 넘는 일은 예축할 수 없는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북측 경비병에 잡힐 수도 있고, 남측 경비병의 총에 죽을 수도 있는, 어디에나 생과 사는 흔한 곳이었다.


아래는 어머님의 자서전 <평화의 어머니> 에 기록된 이야기다.


[ 1948년 가을 어느 날, 한밤중에 머머니는 나를 업고 외할머니는 보따리 두어 개를 들고 집을 나섰다. ... 배고픔 속에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남으로 향했다. ...가까스로 삼팔선 인근에 다다랐지만 나와 어머니, 외할머니는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던 북한 인민군에게 덜컥 붙잡혔다.


...인민군에게 먹을 가져다주며, 그 마음을 누그러뜨려 ‘고향으로 돌라가라’는 말을 듣고 겨우 풀려났다. 하늘의 보살핌이 생사의 기로에서 삶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그날 야밤을 틈타 안내자를 앞세워 다시 삼팔선을 넘었다. 막 넘어섰다든 것을 알고, 나는 너무 기뻐,, 남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남한 쪽에도 경비가 삼엄했다.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나는 즐거운 마음에 노래를 몇 소절 불렀다. 그때 우리 앞의 나무덤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우리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덤불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남한 군인이었다. ... 총을 든 군이들은 인기척을 느끼고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려다가 어린아이의 맑은 노랫소리를 듣고 총부리를 거둔 것이다.


... ‘예쁜 따님을 데리고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떠날 때는 ‘이거 얼머 안되지만 보태 쓰십시오’하며, 뜻 밖에 서울 여행비 까지 주는 고마운 군인이었다. 그 때 내가 만약 노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북한 인민군으로 오해 받아 그 자리에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늘은 이렇듯 애틋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 ] ( 자서전 <평화의 어머니> 78-80쪽 )


어둠 속에서 6살 어린 소녀가 부른 동요,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부르신 노래였으리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어머님 만세’의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가호하심이 없었다면 넘을 수 없는 고개를 이렇게 넘었다. 당신들의 생사는 완전히 잊은 할머니와 대모님의 정성에는 사탄도 어찌하지 못했다.


남한 생활에 정착할 사이도 없이, 6.25 전쟁이 일어났다. 계속되는 어머니들의 고난 길이다. 북한군의 서울 점령이 임박하자 한국군은 적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시켰다. 천행으로 홍순정 외삼촌이 준비한 차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막 한강을 건너는 순간 바로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생사의 고비를 순간적으로 넘은 것이다. 그 아슬 아슬한 순간을 어머님은 아래와 같이 회상하신다.


[ 외삼촌의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자 마자, 외삼촌이 시키는 대로 차에서 내려서 엎드렸는데, 순간 한강 다리가 ‘꽝’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때 한강 다리를 건너오던 많은 시민과 군인들이 강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 어린 나이에도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안 봐도 될 것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도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그 일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 < 참부모경 > 제3편 독생녀 제2장 274-275쪽 )

----------------------------------------------


남한(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가족의 인연을 찾아 삼지사방으로 헤매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1953년 전쟁은 끝났으나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세모녀의 사정도 다를 수 없었다. 참어머님이 소학교 6년을 마치기 까지 남한 각지를 옮기며 5군데 학교를 전학한 끝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런 사정을 말해 준다. 어린 소녀 참어머님은 언제나 침착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는 우등 학생이었고, 사회에서는 차분하고 밝은 모습이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모님의 마음은 오나 가나 ‘다시 오시는 주님’ 소식 뿐이었다. 북한에서 같이 정성을 드린 신앙의 동지들을 찾아 다녔다. 1955년 이대 사건이 터져 “통일교”라는 이름이 세상에 ‘명성’을 얻을 즈음, ‘새주파’의 2세, 김성도 할머니의 둘째 아들 정석천 장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정석천 장로는 천사의 소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재림 주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분이 계시다는 대구로 쫓아 내려갔다. 거기서 만나지 못하고, 장로님이 보내준 편지를 통해 서울로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한달음에 청파동 교회를 찾아갔다.


그간에 ‘하얀 용이 품어 안기는 꿈’을 꾸기도 하고, ‘황금용 한 쌍이 서울을 향해 엎드려 있는 꿈’을 꾸기도 했다. 청파동에서 아버님을 뵙는 그날, 잠간 사이에 그 모든 일생의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눈앞을 지나갔다. 구석에 앉아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그 때가 1955년 12월 겨울이었다.


대모님은 사람으로 신인神人의 길을 걸어가신 계시적 인물이다. 인류를 대표하여 타락의 역사를 총탕감복귀하는 노정을 걸어온 한국 어머니들의 생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분이다. 메시야가 어찌하여 한국으로 오셨는가 하는 그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모님의 대서사 소개 이야기는 아버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친다.


--------------------------------------------


휘호: 충심봉신(忠心奉身)

성화하신 다음날 참아버님은 홍순애 할머니를 ‘大母(대모)’로 추존하시고 ‘忠心奉身(충심봉신)’ 시호(諡號)를 친히 휘호해 내리셨다. ‘참어머님까지 3대 계대를 놓는 데 있어 책임을 다하시고 충성스러운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생축의 제물 된 길을 다 가신 할머니’라는 최상의 영예로운 천적인 존호였다.

----------------------------------------------

- 성화식 말씀 (1989.11.7)


대모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여자들이 갈 사랑의 길에 있어서, 첩첩태산준령처럼 막혀 있는 모든 담을 책임지고 희생해서 헐어 버리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뒤집어씌우기 때문에, 모든 짐은 나에게 지워 달라고 통곡하고…. 10년 동안 그 놀음 했습니다, 매일같이. 부모님 가정의 모든 걱정을 해원해 달라고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한스러운 희생의 길을 통해서, 국가기준을 넘고 세계기준을 넘어서 온 천주에서 통일교회를 반대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 가지고 통일천하를 향할 수 있는, 해방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시대에 온 것입니다. 이 전환시기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갔기 때문에, 충심으로 모두 모셔야 할 대모님의 자격을 가졌기에 대모님이라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기서 이분의 일편단심의 심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이와 같이 자기 후손들 앞에, 여러분의 가정들 앞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전통을 올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 할머니는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반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가정에 모시는 데 있어서 그 이상 일편단심 충정의 도리를 해야 합니다. 오늘 휘호에 충심(忠心) 봉신(奉身)…, 충성스러운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지고 생축의 제물이 되는 그런 길을 다 간 이 할머니와 같이 가게 될 때에는 핍박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오로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붉게 불타오르는 그 심정뿐입니다. 그러니까 홍순애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24시간을 하나님의 뜻과 부모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생각으로 살아야 됩니다. 이 할머니에게는 그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는 생각도 안 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우리가 존경해야 될 할머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모라는 이름을 내가 내린 것입니다. 1989.11.07. 홍순애 대모님 협회성화식 신문로공관

( <충심봉천의 길> 209~210쪽 )

------------------------------------


- 홍순애 대모님 귀환식 아버님 축도 -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1989년 11월 6일 오전 9시40분을 기하여 이 빈소에 방문하였습니다.

할머님이 이 땅 위에서 영계에 감으로 말미암아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에 하나의 심정적 교량을 이루시고, 흥진군과 예수님에 이어진 그 다리를 더욱 견고히 하시어 기독교를 중심삼고 유대교와 통일교를 묶을 수 있는 할머니의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할머님이 이 땅 위에서 하늘이 찾아오던 섭리의 뜻을 아는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사탄권 일본을 중심삼은 핍박시대에, 한국에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위하여 일체를 준비한 역사적인 해와적 3시대를 거치는 데 있어서의 모든 정성을 들여 오늘 이 통일교에 어머님을 모셔들일 때까지 하늘의 내적인 섭리를 이어 연결시킬 수 있는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통일가에서의 하나의 자랑스러운 여성을 대표하여 천상세계에 감으로 말미암아 할머님을 중심삼고 모든 여성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표한 추모의 대상이 되고 하늘을 섬기고 시봉하는 데 있어서의 전통을 이어줄 수 있는 하나의 표상의 생활을 남기게 하여 주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감사하옵니다.


칠십여 생애를 거치는 모든 봉사의 생활의 일상을 통해 이 땅 위에 인연 지어진 모든 통일교회 식구들과 더불어 이 할머님이 눈물과 피땀을 흘려 숨은 가운데서 어머님이 갈 수 있는 길을 터 닦기 위해 홀로 노심초사하면서 울타리가 되어 오늘의 승리가 있을 때까지 걸어 나오는 데 길잡이가 되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지상에서의 육신은 만날 수 없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되겠지만, 영적 세계에서 영을 통하여서는, 하늘이 염려하심을 지상에 남겼을 때는 이 할머님이 중간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저의 통일가를 대표하여 중간적 매개적 자리에서 하늘 앞에 연결시키는 중차대한 책임을 참부모님이 임명하오니,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 <충심봉천의 길> 211~214쪽 )

----------------------------------------------


- 대모님 원전식 아버님 축도 -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89년 11월 7일, 이 시간은 하늘과 땅이 주시하는 가운데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시는 할머님이 당신의 품에 돌아가는, 지상세계의 마지막 남아지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이제 입전식을 거행하는 이 자리를 아버지께서 받으시옵소서.


이 땅 위의 수많은 여성 가운데서 이 할머니를 당신이 불러 세워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험산준령과 고행의 길을 개척하게 하시어 하늘의 내적인연과 지상세계의 인생의 어려운 고빗길을 엮어 가지고 지상에 평탄한 길을 닦게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한 섭리의 뜻을 따라 오랜 기간, 3대를 거쳐 하늘이 분부하시는 뜻을 따라 땅 위에 최종적인 승리의, 당신의 섭리의 중심자가 올 것을 예고하시면서 준비하게 한 지난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때에 얼마나 하늘이 수고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여기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 이러한 남이 알지 못하는 역사적 배후의 섭리의 뜻을 가리기 위해서 수많은 여성들이 희생을 하였습니다. 그 희생한 여성들 가운데 하늘을 대표하고 땅을 대표하여 전체적 제물의 자리에서 희생의 봉화를 대표로 쥘 수 있었던 홍씨 가문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사 각별하신 지시와 더불어 나날의 갈 길을 인도하심 가운데 무지한 인생들 앞에 몰리고 쫓기는 한스러운 역사를 남기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일제 치하에서 수난길을 참고 나오면서 하늘을 위하여 쫓기었고, 해방 이후 40년 간 통일교회라는 이름을 지녔다는 이유로 수많은 인류들 앞에 쫓기고 몰리던 처량한 역사시대를 거쳐와 이제 입전(入殿) 하는 이 할머니는 어머니를 세계 앞에 내세우고 하루 한 시간을 편안히 쉬지 못하였던 역사적 곡절을 지니고 있습니다.


... 당신이 원하던 자랑스런 하나의 딸로서 길이길이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에 있어서 뜻의 성취를 위한 한 교량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 딸이 가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지상에 있는 참부모는 이 딸을 당신 앞에 보내면서 하늘을 동원하고 땅의 모든 선한 후손들을 동원하여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사랑의 하나의 표상으로서, 어머니의 사랑의 표상이요 딸의 사랑의 표상으로서 찬양하오니, 아버지의 품에 품으시옵소서.


이 딸의 공을 치하함과 동시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이 딸이 만민을 위하여 수고한 연고요, 만민을 구도하기 위한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품고 이 모든 불쌍한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희생의 길을 생애를 마치는 때까지 다 하고 간 연고이오니, 이제 가는 그를 보살피시옵고, 당신의 사랑의 마음으로 지상세계에 방향을 설정하시어 이 자리와 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남북의 통일의 운세와 더불어 아시아의 통일, 세계의 통일의 운세를 이루시어서, 당신의 사랑의 장중(掌中)에

잡고 직접 지도 주관하시옵소서.


... 이제 그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한의 고개를 넘어서 참부모를 통하여 한국에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천운이 찾아올 수 있는 길을 이 땅 위에 설정하게 되었사오니, 아버지, 승리의 찬양이 이 삼천리반도 위에 우렁차게 울려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이 할머님이 걸어간 길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인간의 참다운 끝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아는 이 모든 식구들의 마음에 하늘의 긍휼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깃드시어 가장(家長)으로서, 가부(家父)로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형제로서 하늘이 원하시는 소원의 목적을 충분히 성사시킬 수 있는 자들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하나의 기록적인 기념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이 이 딸에게 함께하게 하시옵고, 오늘 이 거룩한 입전식을 당신 앞에 봉헌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전체를 뜻 가운데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 이름으로 당신 앞에 봉헌하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1989.11.07. 파주원전

(<충심봉천의 길> 233~240쪽)

     

 

댓글


연락처

이 사이트에 콘텐츠를 기고하거나  기록자와 연락하고 싶으시면  
thomashwang13@gmail.com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 2026 by Prof. Thomas Hwa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