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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원장님" 이상헌

4월 25일
4분 분량

메시야 재림주님이 탄생하시는 때(1920년)을 전후하여 한반도는 섭리의 때를 위해 준비된 인물들이 많이 태어나게 된다. 다 계시적 인물들이고 주님을 받들어 이룩해야할 각자의 사명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이상헌 원장님은 민족의 운명을 놓고 고뇌하였고, 의학도로 학업에 전념하면서도 인생의 근본문제, 생과 사 ,삶의 목적, 사후의 문제, 영생의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였다. 이상을 추구하는 젊은 학창시절에는 이상세계의 실현을 말하는 공산주의에 심취하여, 관련서적을 탐독하였고 좌파 동지들과 항일투쟁을 같이 하기도 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듯하였으나, 궁극적 진리에 미치지 못하여 마음 한구석이 늘 석연치 않았다. 궁극적인 답을 찾아 새로운 종교세계을 탐문하고 있을 때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1956년 당대에 소문난 통일교의 <원리말씀>을 듣고 때에 맞게 ‘뜻의 길’을 출발한다. 원장님은 20세기 당대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공산주의를 극복할 승공이론과 <원리>의 철학적 해설을 집필할 책임을 하도록 하늘이 준비한 섭리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원장님의 올곧고 대쪽 같은 성품으로 일생을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숫한 일화들을 남겼다. 그중 <평전>내용을 중심으로 당신의 간증 하나를 소개한다.


  [선생님(아버님)은 무한한 지혜의 보고를 갖고 계신 분입니다. 인생문제, 역사, 사회 철학 문제를 고민하다 원리를 듣고 내가 회의했던 핵심 문제가 풀렸기 때문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둘째로 선생님은 통곡의 주인공이시라는 것입니다. 설교하실 때 마다 선지, 선열, 그리고 예수님을 붙들고 통곡하시고, 또한 만인과 만물을 붙드시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붙들고 흐느끼면서 통곡하셨습니다. 역사 이래 하나님처럼 불쌍하신 분이 없다는 것을 나에게 누차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고난 받는 하나님을 알고부터 나에게 신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하기 위해 ...하나님의 응답이 나올 때 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1일 되는 날 밤 드디어 응답이 임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선생님의 고난이 환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서 통곡이 터졌으며, 그들과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불쌍한 모습이 연상되어 흐느끼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상헌 평전- 천성을 향한 수도자의 노정321쪽 이길연 편>


  선생이 금식을 마치고, 밤 열두시에 쌀 죽을 먹으려는 순간, “쌀알이 발딱 일어나고, 생선이 입을 열어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금식했다고, 죄인인 당신이 나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놀라서, 수저를 놓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루 금식을 더 하고 밥을 먹었다”는 간증이 있다. 21일 금식이 22일 금식이 되었다. 참으로 선생의 참됨과 신실함이 어떻했는지 잘 말해 주는 일화다.


  불쌍하신 하나님을 알고 나니 비판적이고, 냉철한 마음 자세는 사라지고, 인류를 살리기 위해 애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람을 대하여는 불쌍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위하고, 사랑하고, 겸손한 마음 다짐은 일생 변함이 없었다. ‘하늘 뜻’을 알고 가는 공인公人의 길에서 ‘자기’가 없는 위하는 삶의 전형을 보여주신 어른이시다. 원장님은 신앙과 인격의 완전한 조화로 이룬 인품으로 “36가정 중에 ‘형제심판’을 통과한 유일한 선배” 라는 말을 듣는 분이다.


  의학 대학의 과정을 마치고 여러 의료기관에서 내과의로 일을 했다. 병원을 차려 ‘원장님’이 되어서도 환자나 직원들은 대하는 마음은 언제나 하늘의 심정이었다. 하늘이 사랑하는 가련한 인류를 놓고 같이 울고 웃는 나날이었다. 사정과 심정이 통하니, 사람들이 자연히 <원리>를 공부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해 축복가정으로 만들었다.


  아버님이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간증을 통해 ‘젊어서 공산주의에 심취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님께서 “이제부터 승공이론을 정리하여 식구들을 교육하라”는 말씀을 내리셨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무엇을 하던 전심전력 매진하는 선생에게 이제 의무활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식구들은 다 ‘총생축 헌금’을 해야 된다”는 말씀을 듣고는 곧 바로 유일한 소유물이었던 집을 팔아 제일 먼저 헌납하셨다.


  생애를 하늘 앞에 다 드리기고 하고 나선 길이다. 밥먹는 시간을 아끼고, 교통 왕래시간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교회 형편은 어디나 어려웠다. 작은 숙소를 마련하고 밥상머리에 앉아 칼 맑스의 자본론부터 다시 읽으며 그의 사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감정이나 감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학술적으로 공산주의 비판서를 쓰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통일사상”, “승공이론”연구에 전념하셨다. 모든 내용을 아버님께 일일이 다 보고하고 확인받아, 이를 세계의 석학들에게 전하고 교육하는 사명에 전력을 다했다. 한국과 일본의 사상계 학자들은 이처럼 확신에 찬 승공이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원장님을 중심으로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동참하여 학술 토론이 활성화 되고 연구기관도 생기고, 국제적 교류와 연대도 이루어 졌다. 1972년 <통일사상 연구원>이 성립되고, 교수아카데미 (PWPA) 도 창립되었다. <원리>을 깊이 이해하는 사상계의 대가- 이상헌 원장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의 열심과 헌신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인간승리의 사례이기도 하다.

            

  이상헌 원장님의 섭리사적 공헌 분야가 또 하나 있다. 원장님은 지상 학문, 사상계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영계의 사정에 달통한 어른이다. 참부모님이 인정하는 영계 박사이기도 했다.


   아버님께서 이를 증거하여 “영계에서 예수님 만나 얘기하고, 석가, 공자, 모하메드,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고 말씀하셨다. 인내하며 온유 겸손한 인격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래는 이에 대한 아버님의 말씀이다.


[“참부모님의 가정을 통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계를 연결시키는 놀음을 이제부터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이상헌 씨가 갑자기 간 것은 이때를 맞추기 위해 갔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영계를 보다 잘 알아요. 근본적인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상헌 씨가 증거하는 걸 전부 다 받아들여 가지고 시간만 있으면, 그걸 읽으라고 하고, 몇 번씩 훈독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상헌 씨가 증언한 영계의 내용을 외워야 돼요. 이거 선생님의 명령입니다. 성양시대의 계명과 마찬가지예요. 영계의 사실을 확실히 아는 거예요. 이것을 확실히 앎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일생 동안 타락 행위를 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이게 중요하냐 이거예요. 영계의 사실을 알면 얼마나 자신이 부끄럽겠느냐? 잘못하면 사방 어디서든 참소를 받는 거예요.


  ...’상헌‘씨 외에는 그 일을 할 수 없어요. 유 협회장(유효원)은 그거 못해요. 어디든지 방문 못해요. 누가 뭐라고 하게 되면 대번에 반항 한다구요. ’상헌‘씨는 양반입니다. 모든 걸 다 참을 줄 아는 거예요. ,,, 여러분도 ’상헌‘씨처럼 그래야 된다구요. 선생님 성격으로는 안된다고요(웃음). 이제부터는 세계가 달라진다고요. 이제부터는 ‘상헌’씨보다도 겸손하고, 세상이 뭐라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참부모님으로부터 지상과 영계를 통하는 인격자로, 교육자로 인정 받은 어른이 이상헌 원장님이다. 영원한 “원장님”이다.


  * 원장님과 어울리는 훌륭한 인품으로 딸의 사명, 아내의 사명, 어머님의 사명을 다 해내신 聖人 사모님, 김한숙 여사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을 달리하여 전해야 할 많은 내용이 있다.

         

     

     

  - 이상헌 원장의 이력 -


1914년 함경남도 정평군 출생

1936년 세브란스 의과대학 졸업

1938년 천도교 가문 김한숙 여사와 결혼

1945년 충북 도립 영동의원 원장

1951-1957년 군산 개정병원 내과 과장

1956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 입교

1958년 군산 월명동 이내과 병원 개업

1959년 12월 21일 금식

1961년 36가정 축복 받음

1968년 <새로운 공산주의 비판> 출판

1972년 통일사상 연구원장

1973년 <통일사상 요강> 출판

1976년 <알기 쉬운 통일사상> 출판

1981년 <Explaining Unification Thought> (통일사상해설) 출판

1984-1990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 이사장

1993년 <통일사상 요강> (두익사상) 출판

    외 많은 <영계 메시지> 출간

1994년 세계일보 사장

1997년 성화. 서울 중앙병원 (향년 8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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