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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誠愛士 양윤영 선생 >>
誠愛士 양윤영 선생 재림의 때다. 한반도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의 1920년대, 30, 40, 50년대는 성령의 시대요, 동시에 계시의 시대였다. 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령한 사람들, 예언하는 사람, 영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고, ‘이제 곧 주님이 오시니, 회개하라’ 외치는 부흥회도 많았다. 임박한 섭리의 때를 알리는 사건이 1954년-55년에 발생한다. ‘이단 통일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제적하고 교수들을 제명하는 사건이 터지고, 연일 언론의 일면을 장식했다. 아버님이 7월4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하늘이 준비한 섭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요한, 최원복, 유효원, 정석천, , ,,, 양윤영, 김영운, 박봉애, 박보희, 김영휘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주님을 만나 섭리의 주역으로 나서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양윤영 선생의 사적이 눈에 띄는 이유는 50년대 통일교 수난 시대의 단초를


자서전
신信애愛충忠모母님, 신애충모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고귀한 타이틀-휘호를 다 받으신 최원복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선생은 평소 잔잔한 미소와 조용한 음성-아버님 말씀을 통역하실 때도 소근소근하듯 통역하시는 것을 벨버디어 수련소에서 들은 적이 있음. 1980년-으로 말씀을 하시고, 언제나 높은 품격과 우아함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목소리를 높여 논쟁같은 것은 절대 할 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시는 분이지만, 불의를 보시면 먼저 행동하시는 분이었고, 옳다 생각하면 앞장서 지지해 나서시는 정의파 의인이셨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자 13살의 "수줍고 순진하고 어질어빠진" 여중1학년생이 항일 데모에 앞장서,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신애충모님 유고집) 신애충모님 최원복 선생 이는 시작일 뿐, 신애충모님의 놀라운 사적은 1954년 아버님을 만나며 섭리적 차원에서 계속됩니다. " 학생들이 이단교


김원필 선생의 일생
‘협회입회원서 1번’인 김원필 선생은 ‘아버님의 수제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예수 앞에 베드로와 같은 인물이다. 통일교 식구 모두가 감사하는 선배 식구다. 평양에서 사범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19세에 참 스승이신 아버님을 만나 일생을 모시고 따랐다. 흥남 감옥으로 충모님을 모시고 면회를 갔고, 다리불구 제자 박정화를 자전건에 태우고 아버님께서 천리남행-대장정을 할 때(1950년12월4일-1951년1월17일), 평양에서 부산까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수없는 생사의 고비를 아버님과 함께 넘었다. 6.25 전쟁중 부산 피난 시절에는 범냇골 토담집을 아버님과 함께 짓고, 밤낮으로 그림을 그려 생활비를 벌어댔고, 아버님께서 <원리원본>을 집필하실 때, 연필을 깍아대느라 땀을 흘렸다. 아버님이 계시적 내용을 써내려가실 때는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원리’를 쓰시기 때문에 연필이 금방 금방 달아버리기 경우가 다반사였다. 김원필 선생이 늦게


다문화 공동체
Building Harmony in Multicultural Communities Modern societies are increasingly shaped by multicultural experiences. People from different nations, languages, and traditions now live, work, and learn together more closely than ever before. This diversity presents both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While cultural differences may sometimes create misunderstandings, they also offer valuable opportunities for learning and mutual growth. A multicultural community thrives when indi


선교역사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참부모님을 따르는 일이다. 통일교 식구들은 본이 되신 참부모님의 참사랑의 헌신과 사랑의 승리 역사에 감동하고 공감하여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뜻’의 길이다. 초창기 개척시대에 ‘뜻’ -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식구들은 개인의 뜻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영계에서 인도하는 대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기꺼이 감사하며 갔다. 아버님, 최봉춘 선교사, 유효원 협회장님 1965 김영운 선교사 본보기 로정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참부모님을 따르는 것이다. 참부모님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하에 비밀 결사를 조식하시고 동지들을 모았다. ‘호랑이 보다 무서운’ 일본순사들의 고문에도 뜻의 동지들을 보호해 내셨다. 해방후 1946년 6월 아버님은 두달된 아들과 산모를 위해 쌀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가, 하늘의 음성을 듣고 서울을 떠나 곧바로 공산 통치하의 평양으로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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