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그리운 고향 상사리 사람들

  • 5월 11일
  • 7분 분량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먼저 맞고 뺏어나오는 섭리’를 하신다. 악한 세상을 대하여 구원섭리를 하시지만 사랑을 앞세워 하신다는 말이다.

  절대자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사랑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선한 편의 사람들이 맞고 뺏어나오는 섭리의 결정판이 한국에서 전개된 메시야 재림역사다. 한민족은 수천년간 외세의 침략을 9백여차례 당하면서도 다른 이웃 민족을 한번도 먼저 침략해 본 적이 없다. 착하고 선한 민족이다.

  구원섭리는 또한 재창조 섭리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아들을 택하신 선민 가운데 찾아 세우는 일이다.

  “ 참사랑과 참생명의 씨를 가진 아담을 잃은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조건이 없는 새로운 씨를 가진 아들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창조 때 아담을 머저 지었듯이 재창조섭리인 복귀섭리도 타락과 무관한 아들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메시야 사상의 근본입니다. 메시야는 사탄의 관장 하에 있는 타락한 혈통을 지닌 사람들의 생명을 부정하고 새로운 씨를 접붙여 주기 위해서 오시는 참사람입니다. 뿌리는 하나님에게 두었지만 후아담으로 와서 아담이 저질러 놓은 적을 청산해야 되는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이 능력만으로 역사할 초인을 메시야로 보낼 수 없는 사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 <천성경> 제1편 제4장 1절 )

-----------------------------------------

  - 한반도 3한三韓 섭리의 시작 -

  2천년 준비한 선민 이스라엘 민족이 인간 책임을 못하여 불신함으로 하나님은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을 또다시 사탄에 빼앗기는 한 많은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늘이 닫히고 땅이 통곡하는 시간을 지나, 하나님의 눈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가운데, 멈춘 곳이 한반도였다. 하나님은 이 땅을 정하시고 2천년 동안 고난 가운데 기르시고 인도하시며 천정이 머물 수 있는 심정의 마음 밭을 갈아오셨다.

  기원 1세기에 3한 三韓 시대가 시작되었고, 6백년에 한반도에 통일국이 완성되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한국적 심정공간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만이 기억하는 피와 땀과 눈물의 노정를 거치며 ‘경천의 한민족’, 침략을 모르는 선한 민족을 기르셨다. 그리고 한반도는 문명의 결실지로 우뚝섰다. 유교, 불교, 기독교등 고등 종교문명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다. 맞기만 하며 복수할 줄도 모르고 하늘만 바라보는 민족의 심정 세계는 하나님의 복귀의 심정의 뿌리에 닿았다. 재림 메시야를 보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탄 때문에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에게 희생시키는 역사를 겪으셨다. 그러나 복귀역사는 맞고 빼앗은 섭리로 계속 된다. 죄 없는 두 아들, 아담, 예수을 사탄이 먼저 쳤기 때문에 셋째 아들, 원죄없는 재림 메시야는 언제 어디서든 하늘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탄생시킬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다. 한민족을 선택하시고 참아버님의 가정을 택하신 것은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한 행사이다.


<원리> 복귀기대섭리시대 1장 (2)

--------------------------------------

 - 증언 -


  경이로운 메시야 탄생의 이야기를 생생한 기억으로 들려주는 다섯분의 문씨 장로님들과 친척분들이 계신다. 충모님, 충부님, 대형님, 그리고 일가 친척, 사촌들이다. 이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메시야 참아버님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유일무이한 귀중한 자료다.

     

  섭리사는 하나님 구원섭리의 주류사다. 참부모님과 연결된 서사는 그것이 개인적이든 가정적이든, 민족적이든 다 섭리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섭리의 내용과 경과 그리고 결과를 설명해 주고 있다.


상사리의 인물들, 문용선, 문승룡, 문용기, 문성균, 문용현 다섯분의 장로님들은 메시야 재림주님의 일가친척으로 한 마을에서 태어나 같이 웃고 울며, 같이 먹고 자며, 같이 자랐다. 그분들이 들려주는 개인적인 증언, 이야기 서사는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특수성과 동시에 섭리적 보편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하 내용은 다섯분 장로님들이 참아버님 식구들과 같이 생활하며 듣고 본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1. 메시야 탄생과 가족의 탕감

  타락한 세상의 신神, 사탄은 메시야 탄생 섭리를 막을 수 없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참부모님 섭리를 파탄시키기 위해 온갖 반대역사를 다 동원한다. 아버님의 일생이 생과 사의 판가리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제의 강점(1905-1945)으로 미족 수난의 암흑이 깊은 중에 아버님 탄생 전후로, 사탄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온가족은 내일의 생존을 알 수 없는 지경으로 연속적 위난을 당하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가족은 생사지경을 헤매는데, 문윤국 할아버지는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하는 일에만 전념하니, 매달려, 도움을 청할 곳은 하늘 밖에 없었다. 결국 문씨 가문은 불타오르는 성령 운동과 애국 운동의 구심력이 되어가는 기독교로 전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맞고 뺏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섭리의 대전환점이 이루어진 것이다.

  

  2. 충모님의 사랑


  메시야 탄생섭리의 중심에 서신 분은 충모님이다. 어머니, 충모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인간책임을 지닌 분이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라, 충모님 자신이 이를 인지했는지, 언제 인지 했는지는 나중 문제다. 분명한 것은 충부님과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된, 하나님의 직접 인도를 받은 섭리적 사명자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사탄은 아버님의 가정을 풍지박산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으나, 충모님의 사랑과 아들 대한 일편단심은 흔들지 못했다.


  일제 치하에서 고등학생 모자만 써도, 경찰이 건드리지 못하던 시절, 아버님은 일본유학을 하시고 대학을 다니셨다. 어머님의 자랑과 기대는 하늘 같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이 전해오는 소식은 ‘경찰서에 잡혀가 죽도록 맞고 있다’,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 뿐이었다.


  그래도 충모님의 사랑은 한결 같았다. 한많은 심정에 심정을 더하여 그 사랑은 더 깊어지고 뜨거워졌다.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다. 아담을 잃어버리고 피눈물을 뿌리시며 인류를 찾아나오신 하늘의 발걸음을 충모님도 걸어가시는 것이다. ‘흥남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재산을 팔아 가며, 떡을 준비하고 차비를 마련하여 남자도 가기 어려운 수백리길 흥남 감옥으로 면회를 갔다. 눈물어린 2년 5개월의 세월이었다.


떡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해서 가지고 가면, 아버님은 어머님의 면전에서 다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나오는 모습을 보면, 앞전에 만들어 간 옷이 아니라, 언제나 같은 누더기 헌 옷을 입고 있다. 충모님은 ‘내가 다시는 안 온다’며 피눈물을 뿌리며 돌아가시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또 다시 면회 갈 준비를 시작하신다. 땅을 팔고, 소를 팔아 가며 떡을 준비하고, 옷을 다시 만든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천정天情의 길, 하늘 만이 기억하는 사랑의 길이다. 대학을 다닌 아들이 그 큰 기대와 소망을 다 꺽어버리고 한의 못을 가슴에 박았댔지만, 그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다섯 장로님들의 한결 같은 증언은 충모님의 지도자적 풍모다. 충모님은 위풍이 당당한 체격에다 호방한 성격의 여성이었다. 대가집 큰 며느리 다워, 책임을 맏는 것을 피하지 않으셨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일들도 쉽게 쉽게 처리하셨다.


  다음은 문용현 장로님의 간증이다

  “나는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고향 집에서 충모님을 보며 생활했다. 지금 지내놓고 보니, 내가 지켜봐 온 충모님이 삶에는 하늘의 뜻이 서려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충부님과 충모님은 인생의 도를 넘으신 분들이어서 부부간 다툼 같은 것을 모르셨다. 충모님은 세상 사람들과 희희낙락하며 살지 않으셨다.

  참아버님이 흥남 감옥에 들어가신후, 타고난 대로라면 전혀 그럴 수 없는 분임에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사신 것이다. 체격도 남달리 건장하시고 누구에게 지지 않는 성품과 자부심을 가지신 분이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하고도 접촉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맴돌다가 한 달에 한번 참아버님 면회만 다녀오셨다”.


  젊어서 그토록 활달하고 당당하시던 충모님은 이제 메시야 아들의 고난에 동참하고 돌보는 일에 모든 것을 다 받친 것이다. 인정人情은 천정天情으로 성화聖化되었다.

     

3. 한없이 착하시기만 충부님


  선친에 대한 참아버님의 말씀이다.

  ”천성이 선하여 어질고 착하신분이었다. 매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누구와도 다툰적이 없었다. 동네에서는 ‘법없이도 살고 교회가지 않아도 천당 갈 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정이 많아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일 줄은 알았지만, 찾아올 줄 몰랐다.“


  아버님의 부친, 충부님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성경을 탐독하며 조용히 기도생활에 전념하셨다. 충부님은 가문의 수난과 민족적 고난의 시대를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시어 이겨냈다. 성경을 통달하셨고 수백곡 찬송을 모두 외워 즐겨 부르셨다. 집안 일은 시원시원하고 능력있는 충모님께 맏기시고 독서를 즐기셨다.

   

4. 대형님(참아버님의 형님)의 사랑


  아래는 사촌 동생 문용기 장로님의 증언이다.

  [ ”나는 어릴 적부터 6.25 전쟁 때까지 대형님(아버님의 형님), 참아버님과 함께 항상 큰집에서 한 이불 안에서 생활했다. 대형님이 노래를 참 잘하셨다. 지게작대기를 딱딱 운치있게 두들기며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천당 가노라>, <차디찬 엄동의 설한 풍아>(후일‘성가’중 하나), <저높은 곳을 향하여> 같은 노래를 자주 하셨다.

  ...일본 사람들이 알면 잡혀간다고 주의까지 주시면서 가르쳐 주신 노래도 있다. 충부님<대한 지리가>다. ...아버님께서는 집회 때마다 이 <대한 지리가>를 자주 부르게 하셨고 나는 ‘화목동’이라는 별명처럼 신나게 잘 불렀다. 참아버님께서는 1987년 5월1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청평 집회에서 “이 노래를 전식구가 부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충부님, 충모님은 당신들이 가야할 길이 있고, 아버님은 아버님이 가야할 길이 있다. 아버님의 성격은 이 길을 가기위해 예비된 것이다.

     

  4. 참아버님의 성격


  장로님들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되는 참아버님의 성격을 다섯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아버님은 어려서부터 인간 인해의 능력이 신통했다. 두 번째는, 동정심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세 번째는 언제 어디서든 주위를 통솔하고 인도하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다. 네 번째는 어떤 일이든 한번 하기로 작정하면 끝을 보고 마는 인내심이다. 다섯 번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성격이다. 복귀섭리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천부의 성격이다.


  장로님들의 들려주는 그림 같은 일화를 몇가지 소개 한다.


1) 어릴적에 동네의 누나들의 시집을 하고 장가를 가는 경우 아버님이 코멘트를 하면, 그 후에 그 말이 예언처럼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2)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강에는 쏘가리, 메기, 뱅장어 들이 많았지만,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아버님은 달랐다. 물속에 들어가 뱀장어의 꼬리를 입으로 물고 잡아내서, 사촌 동생들은 바지 가랑이에 가득 담고 동네 집집 마다 나눠주는 일에 바빳다. 매일 그러니까, 충모님과 동네 아주머니들이 ‘ 우리 집 간장 다 떨어진다. 고만 잡아 와라’고 아우성을 쳤다.


3) 여서일곱살 때 쯤, 한두살 나이가 많은 아이와 싸움을 하다 밑에 깔려 얻어 맞게 되었다. 위에 타고 앉은 아이가 ‘항복을 하면 용서한다’고 요구하며 사정 없이 때렸다. 그러나 아버님은 끝까지 항복을 안한다, ‘내가 졌다’는 말을 하지 않고 계속 버티며 발버둥을 첬다. 결국 위에 타고 앉았던 아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엉엉 울며 일어나자, 이번에는 아버님이 타고 앉아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바람에 어른들이 놀라 겨우 싸움을 말리는 일이 있었다.


4) 종이로 접은 딱지치기를 해도 다 긁어 모았다고, 나무 끝에 달린 밤이나, 대추, 감등 과일을 따는 일도 다 못한다 아쉬워할 때, 아버님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 내어 그 일을 해 냈다. 제일 높이 올라 갔고, 못 올라가는 경우, 막대기를 엮어 위로 집어 던져 맞추었다. 지혜와 실행력이 뛰어났다.


5) 한번은 충모님에게 매를 맞고,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게 느껴졌던지 새파랗게 질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며, 땅에 누워 발버둥치는 바람에 발 바닥에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대장이었다. 맞상대를 찾기 힘들었다. 씨름 대장으로 소문이 났는데,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발휘하신다. 문용기 장로님이 전하는 이야기다.

  “승룡 형님은 서울에서 참아버님과 함께 중학교를 다녔다. 씨름을 잘한다는 함경도 아이가 ‘이 시내에서는 자기를 이길 씨름꾼이 없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결국 참아버님과 함경도 아이가 맞붙었다. 함아버님께서 척 붙잡고 흔들어 보다가 무릎을 툭 치니 함경도 아이가 떼구루루 굴렀다. 최고라던 사람인데 힘도 못 써 보고 지니까 분했던지 또하지고 했다. 그런데 다음번에도 힘도 못 써 보고 넘어가고, 나중에는 참아버님께서 번쩍 들어서 뒤로 넘겨버리셨다.”

  

손으로 쓴 글씨와 발로 쓴 글씨를 선생님 앞에 자랑하다 야단을 맞기도 한 재미있는 일화 한토막- 문승룡 장로님의 이야기다.

“보통 아이들은 손으로 글을 써지만, 참아버님은 입으로도 쓰시고 발가락으로도 쓰셨다. 한번은 내가 참아버님께서 쓰신 글과 내가 쓴 글을 가지고 훈장님께 채점을 해달라고 하며, ‘이건 용명(아버님 아명)이 형이 발로 쓰고, 이건 내가 썼어요’ 하니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발로 쓴 걸 가지고 선생한테 채점을 해 달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셨다.” 참아버님의 다채로운 성격을 잘 말해 주는 일화다.

--------------------------

  

  “그리운 내고향 상사리의 복원”

  

문용현 장로님은 다섯분의 장로님들 가운데 가장 나중 태어나 오랜동안 참부모님을 모시고 고향 이야기를 나누신 장로님이다. 참아버님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충모님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간곡한 심정을 자주 나타내셨다.

  

“ 네가 우리 문중에서 제일 젊으니까, 우리가 다 영계에 간 다음에라도 너는 옛날에 내가 살던 고향에 가서 우리집, 너희집, 작은 집을 그대로 나무 한 그루, 돌맹이 한 개라도 다 찾아서 본래 자리에 갖다 놓고 다 복원해야 된다. 너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있다가 책임져야 한다.” 아버님의 말씀이다.

  

문용현 장로님은 정주 고향을 수차례 방문하셨고, 문용기 장로님이 그린 그림을 참고하여 고향의 작은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였다. 우리는 천일국 정착의 땅 정주 그리고 안착의 땅 안주, 우리 맘의 보금자리, 이 두 곳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상사리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싶은 아버님의 소원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해 주신 문용현 장로님께 감사드린다. 반드시 이루리이다. 아주!!!


  ( 고향 사진 ) 복원계획

     

 
 
 

댓글


연락처

이 사이트에 콘텐츠를 기고하거나  기록자와 연락하고 싶으시면  
thomashwang13@gmail.com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 2026 by Prof. Thomas Hwa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