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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역사

  • 3월 11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8일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참부모님을 따르는 일이다. 통일교 식구들은 본이 되신 참부모님의 참사랑의 헌신과 사랑의 승리 역사에 감동하고 공감하여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뜻’의 길이다. 초창기 개척시대에 ‘뜻’ -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식구들은 개인의 뜻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영계에서 인도하는 대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기꺼이 감사하며 갔다.

아버님, 최봉춘 선교사, 유효원 협회장님 1965
아버님, 최봉춘 선교사, 유효원 협회장님 1965
김영운 선교사
김영운 선교사

본보기 로정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참부모님을 따르는 것이다. 참부모님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하에 비밀 결사를 조식하시고 동지들을 모았다. ‘호랑이 보다 무서운’ 일본순사들의 고문에도 뜻의 동지들을 보호해 내셨다.


해방후 1946년 6월 아버님은 두달된 아들과 산모를 위해 쌀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가, 하늘의 음성을 듣고 서울을 떠나 곧바로 공산 통치하의 평양으로 들어가셨다.

1946년 평양에서 부터 아버님을 따르며 모시고 나온 제자들. 협회원서 1번 수제자 김원필 선생과 계시를 받고 아버님을 찾아온 지승도 할머니(1895년생)와 옥세현 할머니(1897년생)
1946년 평양에서 부터 아버님을 따르며 모시고 나온 제자들. 협회원서 1번 수제자 김원필 선생과 계시를 받고 아버님을 찾아온 지승도 할머니(1895년생)와 옥세현 할머니(1897년생)

동방의 예루살렘 소리를 듣는 평양에서 새말씀을 전하시기 시작한지 2달만에 대동보안소에 끌려가 초죽음의 몸으로 밖에 던져졌다. 그러나 선교는 멈출 수 없었다. 다시 죽음의 수용소흥남비료공장 강제노동소로 끌려가셨다. 6개월을 견디기 어려운 생지옥의 환경에서 12제자를 만드시며 2년 8개월 십자가의 노정을 승리하셨다. 구사일생이요, 기적같은 일이다.

6.25 전쟁으로 UN군이 흥남을 해방함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벗어나 다리 불구로 걷지 못하는 제자를 자전거에 태우고 평양에서 부산까지 걸으셨다.


우리가 모시는 스승 메시야, 참부모 문선명 선생은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실천으로 본을 보이시는 분이다. 당신이 어떤 죽음길도 ‘뜻’이라면 주저 없이 백번이고 천번이고 가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우리 또한 부름앞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통일교 선교사의 전통이 되고 선교역사가 되었다.



평양에서 아버님을 만난 제자들은 피난처 부산에서 다시 만나 토담집 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평양에서 아버님을 만난 제자들은 피난처 부산에서 다시 만나 토담집 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생사를 초월한 절대적 순종과 헌신, 피와 땀과 눈물을 뿌린 복귀의 길에서 하늘이 준비한 사람을 만나고 교회를 개척했다. 기성교단의 지독한 반대화 핍박 속에서도 우리는 전진했고,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로 반세기 만에 세계적 종단으로 성장했다. 종교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승리, 성령의 승리, 사랑의 승리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고 종교의 벽을 넘어 5대양 6대주,190개 국가에 통일교 축복가정들이 하나되어 협회를 창립하고 천일국 시대를 열어나갔다.

선교 현장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자리다. 우리는 선교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섭리의 강을 건넌다. 선교사는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계시적 존재들이다.


통일교 선교 사역은 온 인류가 ‘천일국 독립 만세’를 외치는 그날 까지 멈춤이 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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