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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역사
36对集体祝福1961년 제일12쌍 참부모님 역사는 말씀집, 사진, 비데오등 많은 자료가 선학역사편찬원에 잘 정리되어 보관돼 있다. 기록자는 후대들이 초대교회 섭리의 진행과정과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축복역사와 선교역사를 사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아담 해와가 인간의 책임-참부모의 책임을 못하여 인류역사는 6천년 표류하였다. 인류의 고난과 고통이 하나님의 한의 내용이다. 아들과 딸을 잃어버림으로 창조의 이상를 이루지 못한 한(恨)이다. 참부모님께서는 1961년부터 악에서 떠난 선한 본연의 인간, 선한 가정을 통한 이상천국을 건설하는 축복가정 역사를 전개하셨다. 하나님의 섭리 기반은 이 축복운동을 통해 실체화 되었고, 통일교는 세계적 종단으로 성장했다. 1961년 36 가정 축복을 시작으로, 1963년 72가정, 124가정, 1968년 430쌍, 1970년 777, 1975년 1,800, 1982년 8천(서


< 신애충모님: 최원복 선생님 유고집 >
신信애愛충忠모母님, 신애충모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고귀한 타이틀-휘호를 다 받으신 최원복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선생은 평소 잔잔한 미소와 조용한 음성-아버님 말씀을 통역하실 때도 소근소근하듯 통역하시는 것을 벨버디어 수련소에서 들은 적이 있음. 1980년-으로 말씀을 하시고, 언제나 높은 품격과 우아함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목소리를 높여 논쟁같은 것은 절대 할 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시는 분이지만, 불의를 보시면 먼저 행동하시는 분이었고, 옳다 생각하면 앞장서 지지해 나서시는 정의파 의인이셨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자 13살의 "수줍고 순진하고 어질어빠진" 여중1학년생이 항일 데모에 앞장서,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신애충모님 유고집) 신애충모님 최원복 선생 이는 시작일 뿐, 신애충모님의 놀라운 사적은 1954년 아버님을 만나며 섭리적 차원에서 계속됩니다. " 학생들이 이단교


이봉운 장로 회고록 : <知足者常樂> 지족자 상락
“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면 늘 즐겁다 ” 이봉운 장로님은 이수경 지구장님 36가정의 부친으로, 제주도 피난시절에 이요한 목사님을 만나 서로 깊이 믿는 신앙의 동지가 되어, 1952년 이요한 목사님이 아버님을 만난후 부산으로 오라하니, 전가족을 데리고 함께 식구가 된 첫사례의 인물로, 1953년 수정동교회를 준비하여 드림으로 아버님의 초막시대를 마감하게 한 건국의 조상중의 조상이라 할만한 어르신입니다. 제주도 법환리의 피난생활 이야기는 하나님이 밤낮으로 함께하는 신실한 신앙인 가족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화들로 가득합니다. 기적이 일상화 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봉운 장로님의 놀라운 삶은 202쪽에 274까지 아버님을 만나는 날까지의 제주도 생활-씁쓸한 해초를 6식구가 주식으로 먹으며 은혜속에서 1년을 보낸 이야기에서 서사의 정점을 이룹니다. 장로님 48세, 사모님, 이수경, 이무경, 이연경, 이현경 8세 까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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